1948년 12월 1일, 호주 애들레이드의 소머튼 해변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그는 그저 평범한 신사였습니다. 깔끔한 양복 차림에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 우아한 자세로 해변의 둑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었죠. 마치 잠시 바다를 바라보다 잠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평범해 보이는 신사의 죽음은 호주 현대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미해결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그의 신원은 물론, 정확한 사인조차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발견된 단서들은 하나같이 더 큰 수수께끼를 낳았고, 사건을 둘러싼 의문점들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늘어만 갔습니다.
특히 그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암호 같은 문구는 전 세계 암호학자들과 수사관들을 매혹시켰고,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추리와 가설을 낳았습니다. 이제 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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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머튼 맨 당사자 |
소머튼 해변의 신사: 발견 당시의 상황
1948년 12월 1일 오전 6시 30분, 애들레이드의 소머튼 해변을 산책하던 부부가 한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해변의 둑에 등을 기대어 앉아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바다를 감상하는 신사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가가 말을 걸었을 때, 남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죠.
발견 당시 그의 차림새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완벽하게 다림질된 회색 양복에 흰색 셔츠,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반짝이는 갈색 구두까지 신고 있었습니다. 주머니에서는 영수증과 기차표, 껌, 빗, 담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갑이나 신분증은 찾을 수 없었죠.
더욱 특이했던 점은 그의 옷에 붙어있던 모든 상표가 제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양복 안쪽의 상표까지 깔끔하게 잘려나가 있었죠. 마치 자신의 신원을 의도적으로 감추려 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시 검시관이었던 토마스 클리랜드는 "30년간의 경력 중 이렇게 완벽하게 신원을 감춘 시신은 처음"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부검 결과는 더욱 미스터리했습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되었지만, 건강했던 40대 남성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습니다. 위장에서는 혈관을 수축시키는 디지탈리스라는 약물이 검출되었지만, 치사량에는 미치지 않는 수준이었죠.
수수께끼 같은 단서들: 루바이야트와 탐마닉 문구
소머튼 맨의 옷에서는 더욱 기이한 단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바지 주머니 한쪽에서 찢어낸 종이 조각이 나왔는데, 거기에는 페르시아 시집 '루바이야트'의 마지막 구절 "타만"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었습니다. 이 단어는 페르시아어로 "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죠.
경찰은 이 단서를 쫓아 지역 도서관들을 수색했고, 마침내 애들레이드 기차역 근처에서 한 권의 루바이야트 시집을 발견합니다. 책 뒷면에는 미스터리한 암호문이 적혀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탐마닉 문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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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암호문은 발견 직후부터 전 세계 암호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호주 정부는 물론 FBI와 MI5까지 이 암호 해독을 시도했지만, 아무도 그 의미를 밝혀내지 못했죠. 일각에서는 러시아어의 첫 글자들을 따서 만든 약자라는 설도 제기되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던 군사 암호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루바이야트라는 시집의 선택이었습니다. 이 시집은 11세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카얌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것으로,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을 주로 다루고 있었죠. 특히 발견된 판본은 매우 희귀한 초판본이었는데, 전 세계에 단 몇 권밖에 존재하지 않는 귀중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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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발견된 암호문 |
수사의 진행과 미스터리의 확장
경찰은 소머튼 맨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그의 지문을 호주는 물론 영국과 미국의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했고, 치아 기록으로 신원 확인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죠. 심지어 그의 얼굴 사진을 전국 신문에 게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수사과정에서 한 간호사의 증언이 새로운 단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사건 발생 전날 저녁, 소머튼 해변 근처에서 한 남자가 춤추듯 비틀거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했죠. 당시 그 남자는 소머튼 맨과 동일한 옷차림이었다고 합니다. 이 증언은 디지탈리스 중독 증상과도 일치했는데, 이 약물은 과다 복용 시 환각 증세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49년 1월, 수사팀은 애들레이드 기차역에서 또 다른 중요한 단서를 발견합니다. 수하물 보관소에서 발견된 갈색 가방이었죠. 가방 안에는 빨간색 실 가닥이 들어있었는데, 이는 소머튼 맨의 넥타이를 수선하는데 사용된 것과 동일한 종류였습니다. 하지만 이 가방 역시 모든 식별 표시가 제거되어 있었고, 더 이상의 단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은 그의 죽음을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수사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의문점들이 제기되었죠. 왜 그는 모든 신원 정보를 제거했을까요? 루바이야트 시집과 암호문은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그리고 그는 왜 하필 소머튼 해변을 선택했을까요?
새로운 단서와 가설들
1950년대에 들어서며 소머튼 맨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제시카 톰슨이라는 여성이 경찰에 중요한 증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1947년에 한 남자에게 루바이야트 시집을 선물했다고 진술했는데, 이 책이 바로 소머튼 맨 사건의 그 책과 동일한 희귀본이었습니다.
제시카는 당시 자신이 만났던 알프레드 박스틀이라는 남자가 소머튼 맨일 수 있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경찰이 알프레드를 찾아냈을 때, 그는 이미 살아있었고 소머튼 맨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오히려 이 수사 과정에서 더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는데, 제시카의 아들이 당시 간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디지탈리스와 같은 약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국제 스파이설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냉전 시기였던 당시, 소머튼 맨이 소련의 스파이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었죠. 탐마닉 문구가 군사 암호일 것이라는 가설과 함께, 그의 완벽한 신원 은폐가 스파이로서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DNA 분석이라는 새로운 수사 기법이 도입되었습니다. 2009년, 소머튼 맨의 유해에서 DNA 샘플을 채취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그가 유럽계 혈통을 가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희귀한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어 동유럽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죠.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단서들에도 불구하고, 소머튼 맨의 진정한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의문점들이 제기되었고, 다양한 음모론이 등장하게 되었죠.
현대의 시각으로 바라본 소머튼 맨 사건
2024년 현재까지도 소머튼 맨 사건은 호주의 가장 유명한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있습니다. 현대의 과학수사 기법들은 이 오래된 미스터리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의문점도 함께 던져주었습니다.
최근의 법의학자들은 소머튼 맨의 사인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디지탈리스가 치사량에 이르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의 죽음이 여러 가지 약물의 복합 작용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죠. 특히 1940년대에는 현재와 같은 정밀한 독성 검사가 불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발견하지 못한 다른 약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암호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 암호 해독이 시도되었고, 특히 인공지능을 활용한 패턴 분석이 진행 중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탐마닉 문구가 단순한 무작위 문자열이 아니라, 당시 존재했던 특수한 암호 체계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가장 최근인 2023년에는 소머튼 맨의 손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가 영국 정보기관 MI6의 요원이었다고 주장했지만, DNA 검사 결과 친족 관계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처럼 7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소머튼 맨의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매력은 단순한 미해결 사건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체성, 죽음의 의미, 그리고 우리가 남기는 흔적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Q & A
Q1: 탐마닉 문구는 정말 해독이 불가능한 것인가요?
A1: 현재까지 공인된 해독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최근 AI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해독 시도가 진행 중이며, 특히 2차 세계대전 시기 사용된 특수 암호체계와의 연관성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Q2: 소머튼 맨이 스파이였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A2: 그의 완벽한 신원 은폐, 암호문의 존재, 당시의 시대적 배경 등을 고려하면 스파이설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특히 2009년 DNA 분석에서 드러난 동유럽 혈통의 가능성은 이 추측을 뒷받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