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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록펠러: 사라진 록펠러 가문의 후계자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실종 사건

 1961년 11월 19일, 네덜란드령 뉴기니의 한 해안가에서 미국 최고 부호 가문의 젊은 후계자가 사라졌습니다. 마이클 록펠러의 실종 사건은 발생 당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당시 23세였던 마이클 록펠러는 원주민 예술품을 수집하기 위해 뉴기니 오지를 탐험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스맛족 마을 근처 해안가에서 그가 탄 보트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는 육지를 향해 헤엄쳐갔지만 이후 영영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가 실종된 후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이클 록펠러
마이클 록펠러


예술을 사랑한 억만장자의 아들

 마이클 록펠러는 전설적인 부호 넬슨 록펠러의 아들이자, 스탠더드 오일의 창립자 존 D. 록펠러의 증손자입니다. 1938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예술적 감각과 모험심을 보였습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과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사는 원시 예술과 인류학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마이클은 가문의 기대와는 달리 사업가의 길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그는 1960년 네덜란드령 뉴기니로 떠나 원주민들의 예술품을 수집하고 그들의 문화를 연구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당시 그의 재산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500억 원에 달했지만, 그는 원시부족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마이클은 아스맛족의 목각 예술품에 깊은 매료를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예술품들을 네덜란드의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이 작품들은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순수한 예술혼을 보여준다"라고 말했습니다. 1961년 그의 마지막 탐험은 바로 이 아스맛족의 예술품을 더 수집하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운명의 날, 1961년 11월 19일

 1961년 11월 19일 아침, 마이클 록펠러는 네덜란드인 인류학자 르네 바싱과 함께 쌍동선을 타고 비셀강 하구를 탐험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9시경, 강한 조류와 거친 파도로 인해 그들의 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두 사람은 가까스로 전복된 배에 매달려 있었지만, 해안가는 약 5마일(8km) 떨어져 있었습니다.

 배에서는 연료가 새어 나오고 있었고, 이 해역에는 상어와 악어가 서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바싱은 마이클에게 배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자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나는 수영을 잘하니 해안까지 헤엄쳐 가서 도움을 요청하겠다"며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이것이 마이클 록펠러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르네 바싱은 약 24시간 동안 전복된 배에 매달려 있다가 다행히 지나가던 배에 구조되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경찰 조사에서 "마이클이 수영을 시작한 지 약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멀리서 이상한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마이클의 것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역대급 규모의 수색작전

 마이클의 실종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록펠러 가문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 해군과 공군, 호주 공군까지 동원된 이 수색 작업은 당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민간인 수색 작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현재 가치로 약 30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투입되었습니다.

 수색팀은 헬리콥터와 선박을 동원하여 비셀강 하구 전역과 주변 해안가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특히 아버지 넬슨 록펠러는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수색 작업을 지휘했습니다. 그는 아들을 찾기 위해 현지 원주민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고, 심지어 아스맛족 마을에 직접 들어가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주 동안이나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마이클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네덜란드 정부는 1962년 1월, 마이클 록펠러를 공식적으로 사망 처리했습니다. 당시 사인은 '익사 추정'으로 기록되었지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많은 의혹이 남았습니다.


뉴기니 섬의 위치
뉴기니 섬의 위치


아스맛족의 소행 가능성

 아스맛족은 파푸아뉴기니의 원시 부족 중에서도 특히 신비로운 부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1970년대까지도 식인 의식을 행했다고 전해지며, 특히 '복수의 의식'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외부인이 부족민을 해치거나 모욕을 주었을 경우, 반드시 그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실종 직후 아스맛족 마을에서 특이한 행동들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수색대가 마을을 방문했을 때, 부족민들은 평소와 달리 극도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일부 젊은 남성들은 갑자기 마을을 떠났다고 합니다. 또한 실종 이후 마을에서 이례적으로 큰 규모의 의식이 치러졌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제기되는 의혹들

 마이클 록펠러의 실종 사건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완전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제기된 주요 의혹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공식 기록대로의 익사설입니다. 수영에 자신이 있던 마이클이었지만, 당시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았고 상어나 악어의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 해역에서는 주기적으로 대형 악어가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아스맛족에 의한 살해설입니다. 2014년 네덜란드의 다큐멘터리 감독 프레이저 C. 하이먼은 "아스맛족 장로들이 마이클을 살해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마이클이 해안가에 도착했을 때 아스맛족 전사들이 그를 창으로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생존설입니다. 일부에서는 마이클이 문명 세계를 등지고 의도적으로 실종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1969년과 1974년, 아스맛족 마을에서 "흰 피부의 남자를 봤다"는 목격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했습니다.

 최근까지도 많은 탐험가와 연구자들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고, 당시 상황을 알만한 아스맛족 장로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이클의 실종에 관한 진실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Q & A

Q1. 마이클 록펠러가 수집한 아스맛족 예술품들은 현재 어디에 있나요?

A1: 마이클이 수집한 대부분의 예술품은 현재 네덜란드 라이덴의 민족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가 실종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수집한 작품들도 이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Q2. 사건 이후 아스맛족은 어떻게 되었나요?

A2: 마이클의 실종 이후 네덜란드 정부는 아스맛족 지역에 대한 출입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1963년부터는 학자들의 방문도 엄격히 제한되었습니다. 현재는 일부 소수 부족민을 제외하고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Q3. 록펠러 가문은 현재도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나요?

A3: 넬슨 록펠러는 1979년 사망할 때까지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현재 록펠러 가문은 더 이상 공식적인 조사를 진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